‘생명의 길이 열린다’ 도민 살리는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
소방․자치경찰․방송사 삼각 협력으로 응급환자 이송시간 단축
2024년 8,000여건 이송 지원…구급대원 98.6% “골든타임 확보 도움”
지난해 11월 20일 오후 2시 16분, 서귀포 강정항 인근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시작했고, 곧바로 병원 이송이 필요한 상황. 이때 제주자치경찰단의 싸이카가 긴급 에스코트에 나섰고, 도내 방송사들은 라디오를 통해 실시간으로 구급차량 이동 상황을 전파했다. 환자를 실은 119구급차량은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의 적용을 받아 막힘 없이 교통정체 구간을 통과한 덕분에 환자를 골든타임 내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뒤인 12월 23일 봉개동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고, 마찬가지로 다중 협력체계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환자 이송에 참여했던 구급대원은 “출동 당시 교통체증이 심했지만, 우선신호시스템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환자를 이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운영하는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이 도민과 관광객의 생명을 지키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자치경찰단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 시스템을 통해 총 8,047건(하루 평균 22건)의 긴급 이송이 이뤄졌다. 긴급차량의 1㎞ 이동시간은 전년 대비 16.52%(14.35초) 단축됐다.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은 긴급차량이 접근하면 전방 5개 신호기를 자동으로 제어해 교차로를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
자치경찰단은 지능형교통체계(ITS) 고도화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 13개 교차로에 시범 도입했으며, 2024년 1월부터는 도내 전체 신호기(1,119개소)로 확대됐다. 현재 모든 소방차량(154대)에 시스템이 적용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제주 소방안전본부, 자치경찰단, 도내 방송사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트라이앵글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2022년 자치경찰단, TBN 교통방송, JIBS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2023년 9월부터는 KBS제주, 제주MBC까지 협력망을 확대했다.
119구급차량이 출동하면 종합상황실에서 이송정보를 유관기관에 전파한다. 4개 방송사는 실시간으로 구급차량 이동경로를 라디오로 안내한다. 자치경찰단은 주요 병원 인근 지점에 싸이카와 순찰차를 배치해 에스코트를 제공한다.
이러한 협력 체계의 효과는 수치로 입증됐다.
전체 긴급 이송의 87%(7,031건)를 차지하는 119구급차량의 2024년 평균 이동속도가 전년 대비 18.88%(시속 9.05㎞) 빨라졌다. 1㎞ 이동 시 약 14.35초가 단축돼 응급환자의 생존률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더 빨라진 속도에도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시스템 도입 이후 실시간 정보 공유와 체계적인 교통 통제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단 한 건의 교통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도내 구급대원 27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5%가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98.6%는 골든타임 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한 구급대원은 “특히 출퇴근 시간대 교통체증이 심각한 구간에서 효과가 크다”고 했고, 다른 대원은 “도로전광판(VMS)을 통한 실시간 정보 제공으로 일반차량의 자발적인 양보도 늘었다”고 전했다.
주영국 제주소방안전본부장은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과 도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나 제주에 ‘생명의 길’이 열리고 있다”며 “도민들의 자발적인 길터주기가 모여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만큼 앞으로도 도민들의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광조 제주자치경찰단 교통정보센터장은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은 교통신호 제어를 넘어 도민과 관광객의 생명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으로 자리잡았다”며 “앞으로도 시스템 기능을 고도화하고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 더욱 효율적인 긴급구조 체계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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